목사칼럼

[칼럼] 파레시아(παρρησία)

주세움교회 2024. 3. 22. 15:56

 

고대 그리스어에 파레시아’(παρρησία)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모든을 뜻하는 ‘pan’을 의미하는 ‘rhesis’가 결합된 합성어로 남김없이 모두 다 이야기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을 염려하여, 마음 속 전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진실의 전체를 말하려는 주체의 의지에는 때로 생명을 거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 앞에서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까지 이끈 파레시아를 대담한 저항(libera contumacia)’으로 요약하고 이는 그 영혼의 위대함에서 나왔다고 썼습니다. 이 담대하고 거침없는 파레시아의 외침을 몸으로 보이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사도행전 28:31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담대하게라는 단어의 헬라어가 파레시아’(παρρησία)입니다. 사도바울의 이 담대함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담대하게 거침없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에서부터 왔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시고 담대하게 맞이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밤에 잡혀서 불법으로 재판 받으시고, 주무시지도 못한 채, 빌라도 법정에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형에 언도되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던 군중들은 예수님께 돌을 던지고 침을 뱉으며 비난했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예수님은 나체인체로 손과 발에 못 박힘을 당하시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십자가에서 모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바라보던 로마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찢어 제비뽑아 나눠가졌고, “네가 하나님 아들이면 내려와 보라고 말하며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모진 고통을 피하지 않으시고 담대하고 거침없이 다 당하셔서 이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겁쟁이들의 것이 아니라, 용기있고 자신있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용기있고 자신있는 자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고난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마시고, 담대하고 거침없이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목사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실수가 없는 마음  (0) 2024.04.05
[칼럼] 접촉 결핍  (0) 2024.03.29
[칼럼] 성공과 실패  (0) 2024.03.15
[칼럼] 구원확신의 3가지 증거  (0) 2024.03.08
[칼럼] 합법적인 죄악세상 속에서  (0) 2024.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