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로 '오해(誤解)'에서 삼(3)을 빼면 '이해(理解)'가 되고,'이해'에서 삼을 더하면 '오해'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어떨 때 오해에 빠질까요? 자신의 생각이 상대방의 생각보다 위에 있으면 오해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오해를 이해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어로 '이해'를 뜻하는 'understand'는 '밑에 서다'라는 뜻으로 그 상대방의 눈높이나 아래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면 오해를 풀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해했다가 다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우리는 공감(共感)이라고 하고 공감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을 우리는 화해(和解)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해에서 이해로 건너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삐지고, 싸우고, 이혼하고, 전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머나 먼 오해와 이해의 사이를 건너 화해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욥기에는 오해를 통해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욥과 세친구가 나옵니다. 욥기 22장에서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욥이 형제를 볼모잡고,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지 않고, 과부와 고아를 그냥 돌려보내고, 권세와 존귀만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엘리바스의 지적에 욥은 억울해 하며, 31장에서 자신이 처녀에게 주목한 적이 없고, 불의하지 않았으며, 가난한 자를 돌아보았고, 순금에 소망을 두지 않았으며, 남의 재난을 즐거워하지 않았다고 항변합니다. 이처럼 끝나지 않는 오해의 길을 화해로 이끌어 주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 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당신이 창조자 되심을 선언하시면서 이유 없는 고난에도 순종할 것을 명령하시자 욥은 거기에 순종하였고, 욥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욥과 친구들 사이에는 화해가 긷들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현대인들 속에는 오해만 있고 화해는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이런 오해의 굴레를 끊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2022년도에는 가정, 직장, 교회에서 오해하는 일 보다 화해하는 일이 많으시길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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