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칼럼

[칼럼] 보잘 것 없는 헌신?

주세움교회 2024. 2. 2. 08:32

얀 후스 동상 (체코 프라하)

 

얀 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루터보다 약 100년 앞선 인물(1369)로 보헤미아의 종교개혁자이며 신학자, 프라하 카를 대학 학장과 총장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그는 보헤미아 지역에 전파됐던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토대로 가톨릭교회에 맞서 교회의 세속화를 비난하였고, 이에 교황청은 콘스탄츠종교회의에 소환해 141576일 이단선고를 하고 후스를 화형에 처했습니다. 후스가 순교한 후 후스를 따르는 보헤미아 지역에 후스파가 결성되었고, 141912월에 교황을 따르는 나라들과 [후스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후스파가 다섯번 연속으로 승리했지만, 내부분열로 그만 1434530일 리파니 전투에서 가톨릭 군대에 대패했고 1437년 잔존 병력들이 항복하여 궤멸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후스파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훗날 모라비안교회를 탄생시켰고, 존 웨슬리에게 사회적, 신앙적 영향을 주는 나비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무의미한 것이 없다는 것과, 보잘 것 없는 헌신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55~58에는 안타까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루살렘교회 일곱집사 중 한명이었던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 앞에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죽인 너희는 살인자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이 보인다라고 말하자, 유대인들이 스데반 집사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기고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을 자극하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좀 더 개인적인 자리에서 복음을 전했더라면, 예수님이 하늘보좌에 계신다는 말을 구지 하지 않았더라면 예루살렘교회의 위대한 인물이 죽지 않았을텐데...” 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담대하고, 공개적이고, 확실한 복음의 선포가 있었기에 그 자리에서 유대인들의 겉옷을 받아 들었던 사도바울의 완악한 마음에 금이 가게 되었고, 회심한 바울을 통해 소아시아지역과 로마에 수많은 교회들이 개척되게 된 것입니다.

1445년의 독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좀 더 빨리 만들어졌다면,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아닌 얀 후스의 종교개혁이 유럽 전역에 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스는 후스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임을 믿으시고, 자신의 헌신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지 마시고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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