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칼럼 369

[칼럼] 감동의 한계

20세기 모더니즘의 동력이 “규칙과 통제”였다면, 21세기포스트모더니즘의 동력은 “감동을 통한 설득”입니다. 그래서 예능, 드라마, 다큐멘터리와 같은 TV매체에서 감동코드를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고, 정치에서도 논리와 투쟁보다 약자코스프레 같은 감정터치가 성행하고 있으며, 경제에서도 감동을 주는 메시지를 통해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들도 앞 다투어 감동을 주제로 삼아 교회를 짓고, 목회계획을 짜고,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과연 감동이 만병 통치약일까요?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 앞에 모인 2만여명은 자신들의 저녁식사를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해결해 주신 기적의 메시아에게 감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계속 감동시킬 마음이 없으셨던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며 자신을 먹고 마셔..

목사칼럼 2020.10.17

[칼럼]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 법

사람은 많은 일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가까이 지내고 친절히 대하던 사람이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줄 때 돈, 건강, 환경의 문제가 주는 상처에 몇 배의 힘든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 법은 없을까요? 민수기 12장에서 모세는 자신을 이집트 공주에게서 살게 도와준 누나 미리암과 광야에서 떠돌던 자신을 이스라엘 무리에 들 수 있도록 도와준 형 아론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표면적 이유는 유대인이 아닌, 무리 속에 섞여 있었던 아프리카 여성과 재혼한 것이었지만, 실제는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펼쳐진 주도권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상황에서 모세는 온유함으로 의연하게 대처했고, 아무런 상처 받는 일 없이 잘 넘어..

목사칼럼 2020.10.09

[칼럼] 무엇을 먹고 마십니까?

인도사람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짙은 쌍꺼풀, 오뚝한 콧날, 곱슬머리, 콧수염, 건장한 체구 등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이 검은 피부입니다. 앞에 열거한 것들로만 보면 유럽인과 같은데 하나 다른 점이 피부색이 검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의 조상이 인도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이 아닌, 기원전 15세기에 유럽에서 건너온 이란계열의 아리안족이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기후, 음식 등에 적응되다보니 생김새는 유럽인인데 피부색은 검게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무엇을 먹고 마시는가가 사람모습도 바뀌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한 가지 깊은 당부의 말을 남깁니다. 배부르게 해 주는 존재를 신으로 삼고, 부끄러운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생..

목사칼럼 2020.10.02

[칼럼] 행복을 누리는 자

제가 학생 때 만 해도 박학다식(博學多識), 다재다능(多才多能)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장학퀴즈]에 나가는 것이 우등생의 ‘바로미터’였고 미국 유명 외화 [맥가이버]처럼 되는 것이 남자의 로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해도, 모든 것을 잘하지 못해도 한 가지만 잘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셰프전성시대”입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해도 다른 것은 못해도 가진 것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면 행복을 누리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하박국서]의 하박국 선지자는 원래 이스라엘에게 없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하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무화과, 포도, 소, 양이 없어도 자신에게 예전부터 있었던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

목사칼럼 2020.09.25

[칼럼] 희망을 나누는 자

용혜원 시인의 시 [희망이 보입니다]에서 “희망은 우리의 삶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희망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기도하고 일어서는 사람의 얼굴”, “예술가의 얼굴”, “젊은이의 얼굴”에서 피어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희망은 돈이나 명예나 기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긍정 에너지를 나눠주는 그 사람에 의해 전달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희망을 나누는 사람 중 한 사람을 들라면 구브로섬 레위인 후손으로 부자였던 바나바를 들 수 있습니다. 바나바가 희망을 나누는 사람이었던 이유는 예루살렘교회에 거액의 구제헌금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첫째로 바나바는, 수리아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기에 예루살렘교회에서 바..

목사칼럼 2020.09.18

[칼럼] 불편함의 유익

과거 건강 키워드는 “어떻게 하면 몸을 편안하게 해 줄 것인가?”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게 하면 몸을 귀찮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내어 걸고 안 쓰던 근육을 쓰게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곳곳에 둘레길을 만들어 걷게 하는 것이 건강을 위하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편리함에 취해 산 인간들이 결국 편리함과 행복은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죠. 느헤미야 8:13~18에서 성벽재건을 마친 이스라엘백성은 에스라를 찾아가 부탁을 합니다. 그것은 율법대로 초막절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일주일간 초막을 지어 생활하면서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가장 힘든 절기를 스스로 지키려고 하는 이유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유익이 있음을 그들은 알았기 때문입니..

목사칼럼 2020.09.11

[칼럼] 하나님의 훈련법

“자연농법”이란 농사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친환경농법”과는 약간 다른데요, 친환경 농법은 비료, 농약을 주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만 “자연농법”은 잡초, 해충까지 그대로 놔두는 농법입니다. 그렇다면 이 농법의 취지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농작물이 해충과 잡초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때 건강한 먹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수확량이 작아도 상태가 좋지 않아도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도록 내버려두고 지켜보는 가운데 자란 농작물이야말로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해 줄 DNA를 가진 농작물이란 뜻이지요. 시편 22편 속 다윗은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시고 사람들은 주변에서 수군거리며 비웃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주저앉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기억하면서..

목사칼럼 2020.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