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다림의 열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장기려 박사는 김일성종합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지내시다가 월남하여 남한에서 40년 이상을 살면서, 서울의대 외과교수를 지내시고, 1951년 부산에 복음병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시는데 앞장서서 많은 존경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아픔이 있었는데 1.4후퇴 당시 자신이 돌보던 환자들을 정신없이 트럭에 태우고 내려 오다보니 그만 아내와 4남매를 북에 두고 와서 이산가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재혼하라는 권유를 할 때마다 “나는 내 아내에 대한 사랑이 크기 때문에 재혼하지 않습니다. 아내를 다시 만날 터인데 왜 재혼을 합니까? 아내도 오늘까지 참 사랑을 간직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만약 살아서 아내를 보지 못해도 우리의 사랑은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