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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교리문답해설-15] 죄의 비참한 결과

주세움교회 2016. 6. 10. 11:04



19문 타락한 인간에게 생긴 비참은 무엇입니까?

인류는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여서 세상에서는 비참하게 살다가 죽고, 지옥에서는 영원히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1. 한순간의 쾌락과 돌이킬 수 없는 결과

 2016년 5월 신안군의 한 섬에서 있어서는 안될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섬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기간제 여교사가 섬 주민 3명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여교사에게 술자리에 합석을 강요한 후, 술을 먹인 뒤, 정신을 못 차리는 여교사를 관사에 데려다 주다가 욕정에 이끌려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이 계획적인 일인지, 순간적인 욕정에 의한 일인지는 재판 과정에서 밝혀 지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순간의 쾌락을 누리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이 한순간의 쾌락으로 인해 주어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세명의 가해자는 구속 수감 되었고, 가족들은 성폭행범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이사갈 수 밖에 없게 되었으며, 강간치사죄가 적용되면 최소 20년, 최대 무기징역의 형벌이 내려진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죄는 생각지도 못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죄의 비참한 결과는 6,000년 전 인류의 조상에서 부터 계속 반복되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2. 죄의 비참한 결과-1 "현세에서의 비참함"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6,000년 전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는 비참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첫째로 현세에서 비참함을 겪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로 아담과 하와가 겪은 비참함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동안 벗고 다녔음에도 부끄러움을 몰랐던 두 사람은 선악과를 먹은 이후 부끄러워 숨게 된 것입니다. 이는 사탄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될 수 있다고 한 말과 달리 양심의 가책을 받아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피해 다니게 되는 비참한 결과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두번째의 비참함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부르시는 하나님께 아담은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10)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환경 위험이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 죄의 비참한 결과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의 비참함은 [관계의 깨어짐]입니다.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뿐 아니라, 돕는 베필로 갈비뼈를 취해 지어 주신 하와와의 관계 또한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책임전가와 하와에 대한 책임전가를 동시에 하는 매우 위험한 발언인 것입니다. 이처럼 부부간의 갈등과 경쟁관계는 성격차이나 환경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죄의 비참한 결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네번째 비참함은 [저주]입니다. 남자에게는 노동의 저주, 여자에게는 출산의 저주가 내려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노동과 출산을 행할 때 마다, 죄의 비참한 결과임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더 겸손할 때 노동과 출산의 저주에서 인간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게 될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인 현세에 겪고 있는 부끄러움, 두려움, 관계의 깨어짐, 노동과 출산의 고난 등의 원인은 출신배경, 환경, 재능, 기회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의 비참한 결과에 원인이 있음을 기억하고, 죄를 멀리할 때 우리가 겪는 많은 현세의 고통은 경감되게 될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죄의 비참한 결과-2 "육체의 죽음"

 죄의 비참한 결과는 [육체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기에 인간들에게 죽음은 두렵지만 당연한 것이라고 인식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물건들 또한 수명이 다하면 쓸 수 없기에 인간이나 동물이나 물건들 모두에게는 죽음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물건에는 죽음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들은 죄로 오염되기 전에는 죽음이란 없는 것이 당연한 상태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담의 죄로 모든 인간의 죄의 죽음의 문턱을 다 덤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육체의 죽음으로 죄의 비참함이 끝났다고 보면 큰 오산입니다. 그 후에 영원토록 계속되는 비참함이 모든 인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4. 죄의 비참한 결과-3 "내세의 고통"

 그것은 바로 내세의 고통입니다. 원래 지옥은 사탄과 귀신들이 들어가도록 만드신 곳입니다. 그런데 인간 또한 사탄에게 속아 죄로 물들었기 때문에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옥의 고통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먼저 성경에서 지옥과 관련되어 예를 드는 장소가 바로 [힌놈의 골짜기]입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성의 쓰레기를 소각하는 곳으로 항상 냄새가 나고 해충과 병균이 득실데는 곳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사형시키고, 우상숭배자들이 자녀를 재물로 바치던 공간이 힌놈의 골짜기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지옥은 인간이 싫어하는 모든 것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공의가 아닌 불법이 상식이 되는 공간인 것입니다. 둘째로 마태복음 13:42에서 지옥을 [풀무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풀무불이란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또는 녹이기 위하여 화덕에 공기를 불어넣어 만든 불로 1,200~1,300도 전도가 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뜨거운 풀무불과 같은 곳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뜨거움과 어두움만을 경험하는 것이 죄의 비참한 결과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누가복음 16:23~24의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지옥의 고통은 뜨거운 물 한방울로 혀를 적셨으면 하나 그럴 수 없는 자비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공간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넷째로 마태복음 18:8~9을 통해, 지옥은 손, 발, 눈이 끊어지고 떨어지더라도 가고 싶지 않은 곳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