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칼럼

[칼럼] 진정한 공감

주세움교회 2023. 3. 24. 07:50

미국 심리학자 폴 블룸은 <공감의 배신>(2016)이란 책에서 나는 공감에 반대한다. 공감은 형편없는 도덕 지침이며 우리는 공감이 없을 때 더 공평하고 공정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라고 말했고, 독일의 인지과학자 프리츠 브라이트하우프트는 <공감의 두 얼굴>(2017)이란 책에서 공감은 자아 상실로 이어질 수 있으며, 흑백 사고 또는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보인다라고 말했으며, 가천대 장대익 석좌교수는 <공감의 반경>(2021)이란 책에서 공감은 일종의 인지 및 감정을 소비하는 자원이므로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없다. 따라서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해 공감을 과하게 쓰면 다른 집단에 쓸 공감이 부족해진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을 공감에 대한 비판적인 면만을 부각하는 부정적인 사상가로 보거나,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염세주의자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주관 없이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바탕으로 공감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공감을 해 준다면 나는 상대방에게 휘둘리게 되고, 나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만 공감해 주다 보면, 정말 공감이 필요하거나 올바른 사람에게는 공감해 줄 수 없는 여건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관을 가지고,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린도후서 1장에는 위로라는 단어가 10번이나 나옵니다. 사도바울은 16개월이나 머물며 개척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들이 갈등과 문제에서 벗어나 바른 신앙생활로 참된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위로를 통한 공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에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일곱 번이나 강하게 야단을 치고 있습니다.(2:15, 3:2, 3:14, 3:14, 3:21, 6:5, 8:1) 그 이유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공감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지적하고 바르게 고쳐주는 것이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15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라고 권면합니다. 복음증거는 공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권면과 선포, 강권으로 하는 것입니다. 공감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자녀, 부모형제에게 진리가 없는 공감은 독약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익한 종 박희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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