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강의

[소교리문답-11] 인간의 타락

주세움교회 2016. 5. 14. 11:42



13문 "인류의 첫 부모는 창조된 상태를 계속 유지했습니까?"


인류의 첫 부모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범죄하여 창조된 상태에서 타락했습니다.




1. 하나님에 대한 관점



 옥스포드 대학 수학과 교수인 존 레녹스는 모태신앙으로 무신론자인 스티븐 호킹, 리차드 도킨스와 논쟁을 벌이는 기독교인입니다. 그가 강연에서 한 학생에게 "지식인이신 교수님은 지식의 열매(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하나님을 왜 경배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 때 레녹스교수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이 바로 뱀이 하와에게 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말로 대답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레녹스 교수는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관점만을 크게 부각시켜 아담과 하와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레녹스 교수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식을 금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의 집합체인 과학을 주셨고 아담도 동물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분류학이라는 과학을 스스로 탄생, 발전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살 때 자신의 간증을 하며 답을 마쳤습니다. 19살 때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과학자가 레녹스에게 "노벨상을 받고 싶으냐? 그렇다면 너의 믿음을 집어 치워야 한다."라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레녹스교수에게 하나님은 강요와 억압의 존재가 아니라 창조와 부활로 자신에게 기회를 주시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케 해 주시는 좋은 분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고 답을 하면서 대답을 마쳤습니다.

  레녹스 교수와 학생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자유의지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인 것입니다. 무신론자 학생은 하나님을 억압과 좌절의 대상으로 보면서 자유의지의 한계를 넘기를 원하는 욕망을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다면, 레녹스 교수는 하나님을 구원과 친분의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주신 자유의지에 감사하려는 관점을 가지고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2. 아담과 사탄의 두가지 관점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러한 두가지 관점의 차이는 6000년 전에도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과 사탄의 관점의 차이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아담의 관점의 근본은 "감사"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아담을 창조해 주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도 억울해 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던 것은 결혼한 부부가 결혼사실을 간직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으로 반지를 끼고 다니듯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최소한의 장치로 선악과 금지 약속을 생각했기 때문에 아담에게 있어 선악과를 먹지 못하는 부분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관점은 정반대였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은 "원망"이었고,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질투"였습니다. 왜냐하면 사탄과 그의 무리의 범죄함으로 그들의 운명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원망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에 대해서는 인간만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것 같이 보여서 인간에 대해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관의 관점을 자신의 관점으로 바꾸기 위해 하나님과 직접 약속하지 않은 하와를 유혹할 계획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3. 사탄의 두가지 유혹


  사탄은 하와에게 나타나 두가지 방법으로 유혹을 합니다. 첫째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만 하셨는데 하와는 자신의 서운한 감정을 담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잘못 알고 있었고, 둘째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분명히 죽는다고 말씀하셨는데, 하와는 그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고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 약속을 사탄은 파고들어서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거짓말을 한 다음,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한 이유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선악과를 먹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 앞에 인간이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분명한 뜻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언제든지 사탄의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와는 사탄의 말씀에 의한 유혹에 넘어갔지만, 아담이 아직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의 희망은 남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약속의 당사자는 아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하와를 먼저 유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번째 유혹의 방법인 "관계"를 이용하기 위해 하와를 먼저 유혹했던 것입니다. 아내 하와가 건내주는 선악과, 그가 먹었는데 죽지도 않았고 오히려 눈이 밝아졌다고 하니까 아담은 주의력 없이 선악과를 먹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게 된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같은 상황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질 때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과 같이 하나님께는 원망의 마음, 다른 사람들에게는 질투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자주 갖지 않을 때 우리는 언제든지 아담과 하와처럼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4. 감사하지 않는 죄


  어떤 사람이 화단에 장미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미가 "밤에 춥다"고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화분에 담아 거실에 넣어 주었는데, 장미는 "나비가 오지 않는다"라고 불평했고, 창가에 놓아주자 "고양이가 귀찮케 한다"며 불평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화단에 심어 주었지만 자꾸 옮겨다녔던 탓에 시들고 말았고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초기 기독교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인간의 근원적인 죄는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감사의 관점이 사라질 때 인간은 사탄에게 문을 열어 놓는 꼴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과 말씀을 가까이 하여 사탄이 유혹을 해도 넉넉히 이겨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