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주일오전] 한계를 넘는 삶 (행7:46~51)

주세움교회 2018. 7. 22. 17:17







<본문 : 사도행전 7:46~51>


7: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7: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7: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7: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내용>


1.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다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다하나님이 성전에 계시다중 어떤 말이 맞을까요?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다라고 말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법, 재정 군사는 로마 총독이, 행정은 헤롯왕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종교적 권위 밖에 없었고 그것의 상징이 성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데반 집사가 그 성전을 모욕했기 때문에 재판자리에 끌려오게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다

반면에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다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전에 묶여서 성전을 자신들의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생각에 어긋나는 하나님의 뜻은 과감히 거부하는 유대 지도자들이 변화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본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조상인 아브라함, 요셉, 모세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들 중에서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실, 요셉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돌본 사실, 모세가 시내산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역사적 사실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어디에나 계시고 어디서나 역사하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를 통해 성전에만 매여 하나님을 자신들 이익의 도구로만 삼는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변화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3. 한계를 넘는 삶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교회에서만, 내가 원하는 일에만 역사하셔야 하는 분이십니까, 어디에나 어떤 일에나 역사하시는 분이십니까? 만약 유대인들과 같이 하나님을 내 목적과 수단에 가둔다면 우리는 가정, 직장, 교회에서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한계를 넘지 못할 것입니다. 스데반의 유언처럼 마음의 할례를 받아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드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내 경험 밖의 방법으로 한계를 넘게 되길 바랍니다.